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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공부와 글쓰기로 '나의 꿈, 부자 할머니'를 꿈꾸는 해뜬날 입니다.

예비 시어머니의 마음
방금 아들과 통화를 했다. 공항이라고 한다. 어제 출발했어야 하는데, 하루 지연되어 오늘에서야 출발한다고 전화가 왔다.
오늘이 마침 내 가짜 생일이다. 음력으로 생일을 맞이하던 나는 매번 생일 날짜가 달라지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많이 헷갈려한다. 그래서 양력으로 생일을 맞이하기로 몇 년 전부터 가족끼리 합의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어색하다. 마치 남의 생일을 빌려 쓰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나도 헷갈리지 않아서 좋긴 하다.
예비 며느리가 될 아가씨와 통화를 했다. 공항에 아들과 함께 있던 그 아이가 엄마 생일이라고 말을 하고, 비행기 타기 전에 급하게 전화를 연결시킨 모양이었다. 미래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극히 형식적이고 예의바른 멘트들이 조심스럽게 오고 갔다.
"생일 축하드려요. 저는 이제서야 알았어요. 미국 가기 전에 한번 찾아뵙고 가야 하는데, 죄송해요.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어요. 다음에는 꼭 할게요."
너무나 예의바른, 극히 형식에 맞춘 대화였다. 나 또한 같은 말투로 답했다. 마음속으로는 '괜찮다, 괜찮다'고 속삭이면서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색하게 정제되어 있었다.
"괜찮아요.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한 번쯤 들렸으면 했지만, 다음에는 가기 전에 한번 더 얼굴 봐요. 그리고 아버님께 미국에 돌아간다는 전화 한 통 부탁해요. 잘 가요!"
나의 대답 또한 최대한 예의를 갖춘, 남과 남이 나누는 대화 같았다. 그리고 예비 며느리에게 하는 예의바른 시어머니의 말투였다.
만약 내 딸이었다면, 내 아들이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한테 한 번 더 얼굴을 내밀고 가는 것이 도리지! 그리고 아빠한테도 빨리 연락했어야지, 어제 저녁이라도 인사했어야지, 너 제정신이야!" 이렇게 마음속 화가 그대로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남인 그 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직 결혼하기 전인데, 무엇보다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인데, 괜히 그 사이에 시부모가 끼어들어서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겠는가.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하는 솔직한 잔소리를 그대로 할 수 없었다. 내 아이들에게 쏟아붓듯이 터트리는 진짜 마음을 숨겨야 했다.
시어머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가슴 깊이 솟구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최대한의 이해와 배려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요즘 나는 유독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보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장면들이 더 이상 단순한 재미거리가 아니다. 화면 속 상황들이 하나하나 내 가슴을 조여온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어쩜 저런 며느리가 있을까? 어쩜 저런 시어머니가 있을까?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마음으로 느끼며 바라보게 되었다.
요즘 밤마다 고민한다. 좋은 시어머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어떻게 해야 '좋은 시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행동하는 게 진정 옳은 시어머니일까? 무엇이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길일까?
현대 사회라서 그런 걸까? 이런 고민들을 해야만 하는 시어머니가 되었다니, 때로는 참 막막하기도 하고, 현 시대가 이러하니 나도 이 시대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정말 마음이 무겁다는 생각도 한다. 그냥 가족끼리만 살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그 평온한 공간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서 보이지 않는 작은 긴장들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아들이 장가를 가서 온전한 한 가정을 이루고, 부모를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다면, 그래서 완전히 독립하여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제 막 상견례를 마치고 새로운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하려는, 자녀를 결혼시킨다는 생애 첫 경험이기에 나도 아들도 모든 게 서툴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 상황마다 너무 신중하게, 너무 조심스럽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들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며느리 입장에서 바라보기, 그리고 내 입장에서 정리하기. 이런 것들 때문에 사실 마음이 복잡하다. 인간관계의 미묘함과 어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전에는 심리학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책들을 거의 손에 들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서와 부동산 관련 서적만 찾아 읽었다. 그런데 요즘은 주로 인생을 담은 에세이들을 탐독하고 있다. 인생의 선배들이 쓴 깊이 있는 에세이,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기 위해 젊은 작가들의 에세이도 두루 읽고 있다.
'좋은 시어머니'라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댁 때문에, 친정 때문에 아이들의 소중한 결혼에 금이 가는 일만은 절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단지 그것뿐이다. 나는 존경받는 훌륭한 시어머니가 되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다. 오히려 아이들이 진정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기를, 따뜻한 가정을 이루며 평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현명한 시어머니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싶을 뿐이다.
이와 관련된 책이 있는지 오늘은 서점에 가봐야겠다. 아니, 인터넷 검색부터 해봐야겠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들의 결혼 준비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해두면서,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을 꿈꾸는 수많은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책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 말이다.
어쩌면 지금 이 복잡하고 섬세한 마음들, 이 모든 고민과 깨달음들이 나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같은 처지의 많은 어머니들이 이런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조금은 위로가 된다.
오늘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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