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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꽃보다 마흔 님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쨍하고 해뜬날입니다.
저의 꿈은' 내 인생에서 1권의 책'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결심했습니다.
1년에 최소한 50권의 책을 읽고 도서 후기를 쓰자!
그리고 반드시 책 1권을 출판하자. 그러다가 활동을 함께하는 동료를 통해 '꽃보다 마흔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오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며 느끼며 배우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가을, 그래, 좋지. 가을은 남만의 계절이고, 가을을 생각하면 오색으로 물든 산들이 떠오르고,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등산하는 수많은 아줌마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한 가을 숲길을 자가용으로 드라이브하며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나에게 가을은 이상하게 아무런 추억이 없었다. 교회 수련회에 참여한 것 외에는 특별한 추억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기억을 짜내려고 해도, 이상하게 가을에 대한 추억이 없었다. 그래서 딸에게 물어봤다. "혹시 우리 가을에 어디 여행간 적 있니?" 딸은 "아니, 없는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맞다. 나는 가을에 특별한 추억이 없었다. 왜 나는 가을에 대해 아름답고 잊을 수 없고, 나를 행복하게 한 추억이 하나도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중, 나는 이런 고백을 했다. "왜 나는 이 기억을 잊고 살았을까?"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리고 슬픈데, 그 기억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그게 가을인 줄은 몰랐다. 계절은 잊은 듯하다. 아니, 계절과 그 기억을 아마 지우고 싶어 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 기억이 슬금슬금 올라오자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가 아마 2012년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그 나라에 내전이 발생해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남편은 그 나라에 남았고, 나는 중학교 3학년인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에 돌아왔다. 아들은 해외에서는 중학교 3학년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중학교 2학기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다행히 아들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고, 성적도 다시 상위권에 들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흘러 남편이 있던 나라가 안정되자 남편은 다시 해외로 돌아오라고 나를 재촉했다. 그때 아들은 중학교 3학년 2학기, 딸은 중학교 1학년 2학기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최소한 2학기까지만이라도 마치고, 즉 한 학년을 끝마친 후에 돌아가고 싶었다. 이때쯤 아들은 더 이상 아빠가 있는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형이 있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으니 미국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아들을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중학교 3학년 2학기를 마친 후, 즉 한 학년을 끝마친 후에 아들을 미국에 보내고 딸과 함께 해외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아들은 16살이었다. 엄마로서 아들을 먼 나라로 보내는데, 적어도 미국에 가는 것도 보고, 중학교 마지막 학기라도 곁에서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재촉했다. 남편은 "16살이면 다 성장했기 때문에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은 필요 없는 시기"라며 하루라도 더 지체하지 말고 빨리 오라고 했다. 나는 남편과 계속 이런 문제로 다툼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나는 아들을 한국에 혼자 두고 딸과 함께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들을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주변 삼촌과 형에게 맡기고 나는 남편에게 갔다. 당시에는 그 선택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들보다 남편이 더 우선순위라고 생각했다. 아들도 자신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아들은 내가 없는 동안 중학교 3학년 2학기를 잘 마쳤다. 부모님도, 이모도, 주변 사람들도 아들을 잘 돌봐주었다고 했다. 멀리서 통화할 때마다 아들은 늘 나를 안심시켰다. 아들은 혼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혼자서 유학 준비를 하며 6개월을 보냈다.

 

 

그때는 몰랐다. 16살의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중학교 3학년 시절을 보내고, 혼자서 유학 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이었는지 나는 사실 깊이 몰랐다. 그저 본인이 한국에 남겠다고 했고, 주변 사람들도 다 잘해주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1년이 넘어서 새롭게 시작된 해외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나의 생활이 더 우선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아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나는 내 생활에 집중했다. 아들은 그렇게 혼자 생활하다가, 혼자 유학 수속을 받고, 형이 있는 미국에 갔다. 다행히 미국에 형과 친척들이 있어서 오히려 아들은 더 좋았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친형이 있으니 더 다행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이 내가 간직한 둘째 아들의 모습이다. 얼굴에 여드름이 송글송글 올라오던 시기, 미소년처럼 귀여웠던 그 앳된 소년의 모습, 그것이 내가 우리 둘째 아들에 대해 간직한 모습이다. 이 모습에서 둘째 아들은 내 마음속에서 멈춰졌다. 엄마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된 둘째는 16살 어린 소년이다. 엄마에게 대들고 짜증내던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다. 그 이후에 나는 몇 차례 또 한국과 해외를 오가는 삶을 살았다. 자주 한국과 해외를 오가는 생활 때문에 학교생활에 힘들어하던 딸 때문에 아들들이 있는 미국에 가려고 했지만, 나와 딸은 미국 비자가 세 번 이상 거절되어 미국에 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나는 둘째 아들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나는 아들들의 졸업식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대학교 졸업식 등, 나는 아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저 영상으로 보는 아들, 어느 날 갑자기 커버린 아들, 어느 날 성년이 된 아들, 그 앳된 소년은 점점 사라지고 아들은 청년으로 바뀌었다. 16살 때 헤어진 이후 지금까지도 나는 영상으로만 아들을 만나고 있다. 아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 그때 내가 너무 잘못 판단했다고 말한다. 한 학기, 6개월만 마치면 되었는데, 미국에 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아들도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면서 힘들 때면 엄마 목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본인의 눈물을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얼른 전화를 끊어버린다. 엄마에게는 언제나 씩씩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요즘 나는 아들들의 삶을 가만히 누워서 생각할 때가 많다. 미국에서 부모 없이, 물론 친척들이 있었지만 얼마나 눈치를 보며 치열하게 살았을까?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부모와 함께 있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부자인 부모들이 방학 때나 생일 때, 또는 졸업식 때 미국에 방문해서 함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본인들이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용돈을 벌며 학교생활을 해야만 할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마음이 아파온다.

 

 

가을, 나에게 가을은 이렇게 아픈 기억을 주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을 잊고 살았나 보다. 나에게 가을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기억 때문이었다.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나도 모르게 가을을 잊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가을은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여행하기에도, 산책하기에도, 독서하기에도, 삶을 살아가기에도 아주 예쁜 모습과 신선한 날씨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그래서 누구나 가을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가을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나도 이제 그 아픈 기억을 잊어야 하지 않을까? 엄마로서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가을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을 주고 있듯이 아들들은 비록 부모와 떨어져서 미국에서 오롯이 형과 동생이 서로 의지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서 지금 어엿한 약사요 컴퓨터 웹 개발자가 되어 부모인 나를 흐뭇하게 하고 있으니, 이제 그 아픈 가을의 기억을 잊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시간 이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해 본다. 그리고 청명하고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사람들이 마음껏 누리며 즐거워하는 것처럼 나 또한 언젠가 미국 초청 비자를 받아 아들들을 미국에서 만나 기뻐하는 순간을 꿈꾼다.

 

 

 

 

 

오늘도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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