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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꽃보다 마흔 님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쨍하고 해뜬날입니다.
저의 꿈은' 내 인생에서 1권의 책'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결심했습니다.
1년에 최소한 50권의 책을 읽고 도서 후기를 쓰자!
그리고 반드시 책 1권을 출판하자. 그러다가 활동을 함께하는 동료를 통해 '꽃보다 마흔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오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며 느끼며 배우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갈등의 시작과 이해의 부족

 

 

그때부터 큰아이와 저의 갈등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심하게 큰아이를 야단치고 때리고 심지어 집에서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을 때리고 야단치고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대문을 잠그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큰아이는 잘못했다고 울면서 빌거나, 때로는 집 대문이 잠겨 있는 날에는 친구 집이나 아는 형 집에 가거나, 교회에 있는 빈 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이런 날들이 2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저는 큰아이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도울 방법을 찾기보다 제 삶의 기준과 상식 수준의 잣대로만 아이를 판단하고 책망만 했습니다. 큰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 것, 게임의 재미와 즐거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청소년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나는 엄마야, 엄마인 나의 생각은 다 옳아. 게임은 나쁜 거야. 너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어. 무조건 엄마 말에 복종해야 돼’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자녀 관련 책을 읽거나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 게임에 빠진 아이를 둔 엄마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관한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아이보다, 아이의 인생보다, 아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춘기 호르몬보다 나의 체면이 더 중요했습니다. 내 아이가 다른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인해 내 체면이 손상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아이를 다그쳤고, 그 아이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하면서 엄마인 나에게 억지로 복종하게 만들었습니다. 큰아이가 컴퓨터를 만지는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예민하게 굴었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변화

 

그렇게 1년, 2년,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큰아이의 상태와 둘째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될 즈음에 남편이 있는 곳으로 아이들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워킹맘으로서 아이 셋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힘들다고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곳에서 큰아이는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PC방도 없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나가서 놀 만한 장소도 거의 없는 나라였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학교와 집만 오가는 매우 단순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생활을 많이 하다 보니, 집에는 엄마가 있어서 컴퓨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인터넷 상태도 좋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어학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큰아이는 게임보다는 이방 땅에서 맞닥뜨리는 문화로 인한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컴퓨터와 게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즐기는 시간이 많았지만,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못할 정도로 절제하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큰아이는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했고, 현재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컴퓨터 앱 프로그램 개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스스로 코딩을 공부하고 웹을 만들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마케팅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컴퓨터 관련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고, 무엇보다 엄마의 컴맹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반성과 새로운 관계

 

어느 날 남편은 어떤 비디오를 가족 카톡방에 올렸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장면을 내가 카메라에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남편과 둘째는 책을 보고 있고, 딸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으며, 큰아이는 내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영상 속에서 저는 큰아이에게 야단치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컴퓨터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너 또 컴퓨터 가지고 뭐 하냐?’ 매우 짜증 내는 말투였습니다. ‘엄마를 위해서 지금 좋은 영화 다운로드하고 있어요. 엄마가 이 영화 보고 싶어 했잖아요.’ 인터넷이 느리기 때문에 큰아이는 평소 내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를 다운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큰아이에게 짜증부터 냈던 것입니다.

 

이 영상을 가족 카톡방에 올린 남편에게 화를 냈습니다. 남편은 화를 내는 제 모습에 어리둥절해했고, 남편과 둘째, 그리고 딸은 재밌다고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저는 그 영상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영상을 가족 카톡방에 올린 남편에게 화를 냈습니다. 남편은 화를 내는 제 모습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성숙하지 못했던 제 모습을 그 안에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집으로 꽉 뭉친 현명하지 못한 엄마로서의 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영상을 영원히 내 뇌리에서, 내 인생으로부터, 그리고 큰아이의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내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뭣이 중헌데!’ 게임에 빠졌다고 야단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남편 없어도 아이들을 잘 키운다는 체면보다 큰아이의 마음이 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큰아이의 자존심이, 큰아이의 다친 마음이 엄마의 자존심보다 더 먼저 보장받아야 했습니다.

 

‘뭣이 중헌데!’ 자식이 게임 한다고, 자녀가 게임 때문에 공부 못한다고, 아들의 게임 중독 때문에 엄마인 나의 자존심에 흠집이 생긴다고 투덜거리지 말아야 했습니다.

 

‘뭣이 중헌디!’ 내 아이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내 아이의 상처가 더 중요합니다. 내 아이의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더 중요합니다.

 

‘뭣이 중헌디!’ 엄마인 나를 먼저 챙기기보다 사춘기로 아파하는 아들을 먼저 챙겼어야 했습니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책망하기보다 아이에게 좀 더 자상한 엄마로 다가가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사춘기 시기를 잘 견딜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엄마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잘 돕고 양육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엄마가 되어야 했습니다.

 

‘뭣이 중헌디!’ 지금 저와 큰아이와의 관계는 매우 좋습니다. 가끔 카톡으로 통화하면 보통 1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큰아이는 갔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겪으면서 주변 지인들로부터 큰아이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들을 때마다 저는 큰아이를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큰아이 편에서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말은 충분히 공감했지만 저는 그 문제를 가지고 큰아이에게 야단치지 않고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하였기에 지금 저와 큰아이는 1시간씩 수다를 떠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뭣이 중헌디!’ 한 사람의 마음이, 한 사람의 삶이 더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오늘도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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