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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꽃보다 마흔 님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쨍하고 해뜬날입니다.
저의 꿈은' 내 인생에서 1권의 책'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결심했습니다.
1년에 최소한 50권의 책을 읽고 도서 후기를 쓰자!
그리고 반드시 책 1권을 출판하자. 그러다가 활동을 함께하는 동료를 통해 '꽃보다 마흔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오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며 느끼며 배우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고민의 시작

 

‘뭣이 중헌디’라는 주제를 놓고 한동안, 아니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뭘 써야 하지? 도대체 이렇게 애매하고 명확하지 않은 주제가 있을 수 있나? 하며 시간만 흘러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주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할 때는 글벗들의 글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때 글벗들의 글을 읽으면 글을 써야 하는 방향이 잡힌다. 아니나다를까, 글벗들의 글을 읽으니 어느 정도 글의 방향성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뭣이 중헌디!” 진짜 중요한 것은 놓치고 주변의 것에 더 관심과 정성을 쏟는다는 것이 아닐까? 사람에게 관심과 정성을 기울일 때,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정말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인생에서의 실수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뭣이 중헌디?’는 언제 발생하였을까? 나는 ‘뭣이 중헌디’와 같은 어리석음, 실수, 똥고집 같은 사건을 왜 일으켰을까를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자 저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해졌다. 동시에 내 마음은 슬픔으로 뭉클해졌다. 그러다가 그 사건들이, 이 일들이 ‘뭣이 중헌디’ 주제와 맞는 이야기일까? 아닐 것 같은데!라는 헷갈림이 왔다. 또다시 나는 좀 더 평안하고 결론이 좀 더 평화롭게 끝난,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무리가 잘 된 사건들을 끄집어내려 애를 썼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갔다. 옆에서 선풍기는 윙윙거리며 조금은 시끄럽게 쉼 없이 돌아가면서 나의 집중력을 자꾸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

 

지금도 그 사건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내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부끄럽고 지우고 싶은, 영원히 나의 뇌리에서, 그리고 우리 아들 뇌리에서 지워주고 싶은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일 때문에 제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있다. 그리고 그런 행위가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아이들에게 좀 더 자유로운 엄마, 아이들의 자율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엄마로 살짝 -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미하게 -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엄격한 어린 시절과 엄격한 엄마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조금은 엄격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어야 나도 수저를 들어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아버지가 맛있는 음식의 최우선권자였고, 모든 일이 아버지 위주로 돌아갔기에 나는 아버지를 무서워하며 자랐다. 그것이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부모에게 반항하지도 부모와 맞대응하는 심한 사춘기도 겪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을 타지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모와 심한 마찰을 겪지 않았고, 여전히 엄한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이것이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이다’라고 착각하며 매우 예절과 예의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형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새 아이들에게 매우 엄격하고 엄한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예절과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하에 엄마아빠에게 깍듯이 ‘~아요, ~어요. ~습니다. ~입니다’를 사용하도록 교육하였다.

 

그래서 아이들의 작은 실수도 잘 용납하지 못했으며, 특히 그 당시 아이들이 게임을 많이 했고, 한참 게임이 막 출시되어 거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게임에 빠져들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 큰아이도 게임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아이들 세 명을 키우면서 동시에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이었다. 아침에 초등학생 두 아들은 학교에, 그리고 막내딸은 유치원에 보내고 난 후 오전에는 집안일과 나의 개인적인 일을 하였고, 학원강사라서 오후에 출근을 하였다. 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에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학원을 가거나, 고모가 돌봐주거나, 퇴근한 남편이 돌봤다. 남편이 있을 때는 특별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니 문제가 가라앉은 쌀뜨물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잠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겉은 맑고 투명하고 평화로워 보였지만 큰아이의 게임 중독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가고 있었다.

 

 

 

 

큰아이의 게임 중독

 

이런 잔잔한 바다의 표면 같은 상황에서 남편이 해외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다. 큰애가 초5, 둘째가 초3, 딸이 유치원 때였다. 둘째 아들과 딸은 성품이 얌전하고 조용하였기에 나는 별다른 어려움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큰애는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게임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아빠의 부재로 저녁에 관리하거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기에 더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 오후에 출근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학원 강사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상태를 자세히 살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말해주기 시작했다. 큰애가 게임을 많이 하고, 학교 공부보다 거의 매일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실 믿기 어려웠다. 큰애는 사춘기 상태여서 약간의 반항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내 말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의심하며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큰애를 유심히 지켜보고 관찰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부재한 상태에서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평소에도 매우 엄격한 교육의 잣대를 들이대던 엄마였기에, 큰애의 게임을 즐기는 것을 전혀 용납할 수 없었다. 내 아이가 게임에 몰입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게임을 매우 불경건한 오락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게임에 몰입하는 큰애를 용납하지 않았다.

 

 

 

 

 

오늘도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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