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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꽃보다 마흔 님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쨍하고 해뜬날입니다.
저의 꿈은' 내 인생에서 1권의 책'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결심했습니다.
1년에 최소한 50권의 책을 읽고 도서 후기를 쓰자!
그리고 반드시 책 1권을 출판하자. 그러다가 활동을 함께하는 동료를 통해 '꽃보다 마흔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오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며 느끼며 배우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나의 구슬 같은 처녀시절

 

 

구슬 같은 처녀시절? 과연 나에게 구슬 같은 처녀시절은 언제였을까? 내 인생에서 구슬처럼 영롱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찬란히 아름다웠던 시절이 어느 때였을까? 매일 혼자 걸으면서 ‘구슬 같은 처녀시절’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아련하고 애틋하면서도 풋풋했던 구슬 같은 처녀시절은 아마도 고3 때부터 대학교 3학년까지인 것 같다.

 

고3 시절 대학 입시로 아침 5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또 자습하면서 보낸 세월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절에는  인생에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또한 밤 10시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을 향해 가는 시간 동안 친구와 함께 온갖 수다를 떨며 호호 하하 웃으면서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리고 내일의 새 에너지를 충전하곤 했다. 대학 입시 준비라는 부담감 속에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만큼은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순수하고 순진한 19살 소녀로 돌아가곤 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그때의 상황들이 더욱 또렷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동안 나는 그때의 기억을 잊고 있었고, 그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름이 기억난다. ‘정아!’ 그 아이의 성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름만 이처럼 또렷하게 생각이 난다. ‘정아!’ 그때 그 시절 가까웠던 친구들은 많다. 그런데 유독 ‘정아!’만 기억이 난다.

 

 

 

 

정아와의 추억

 

 

정아는 나의 자부심이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나는 시골에서 도시 명문 (?) 고등학교로 유학을 간 학생이었다. 그래서 고1, 2학년 때는 참으로 외롭고 조금은 고달픈 시절을 보냈다. 고2 때까지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정신없는 삶을 보냈다. 그러다가 고3 때 하숙을 시작했고, 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자 학교와 그 도시에 차츰 익숙해진 상태였다.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정아의 집 방향과 같았다. 정아는 나와 같은 반은 아니었다. 우연히 같은 길목에서 만나 집이 같은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아는 반에서 Top이었다. 그리고 전교에서 거의 1, 2, 3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정아는 공부도 잘할 뿐만 아니라 똑똑했고, 얼굴도 예뻤다. 가정 형편은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것 같다. 우리는 매일 밤 10시에 함께 집으로 가면서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그리고 정아는 나를 무척 좋아했다. 나는 고3 시절 한 번도 친구들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오히려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나의 친한 친구와 외모를 비교당하면서 내 안에는 외모에 대한 깊은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아는 나를 무척 예쁘게 보아주었다. ‘너는 참 예뻐. 너는 눈도 예쁘고, 꼭 서양 사람처럼 또렷하니 예뻐!’라고 말했다. 어느 날 정아네 집에 놀러 갔고, 정아 엄마에게 나를 소개할 때, ‘엄마, 내 친구 OO야. 얘, 참 예쁘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아가 나를 예쁘다고 할 때마다 나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없는 농담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런데 정아가 자신의 엄마에게 나를 소개할 때 그 말의 진정성을 처음 느꼈다. 그리고 너무나 깜짝 놀랐다. 정아는 나를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구나, 그리고 나를 정말 좋아했구나! 정아의 진심을 알고 난 이후 나 또한 정아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꿈을 나누면서 꼭 서로 원하는 대학에 가자고 다짐하곤 했다.

 

정아의 목표는 서울대학교였다. 그리고 나는 불어불문학과, 경희대학교를 가는 것이 목표였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거의 반 꼴등을 맴돌던 나도 분명한 목표가 생기니 주말 없이 밤낮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점차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진척을 이루어 냈다. 나의 열심을 보고 반 친구들도 ‘너는 반드시 경희대학교 불문과에 갈 수 있을 거야!’라고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해 주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비록 ‘서울대, 경희대’일지라도 우리는 매일 만날 것이고, 우리의 우정은 절대 변치 말자고 정아와 나는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꿈을 향한 도전과 그 이후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 입시를 우리는 치르게 되었고, 수능 점수를 받아보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너무나 저조한 점수를 얻게 되었다. 정아도 생각보다 낮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대학을 지원하는 그날까지 우울한 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정아 앞에서 너무 챙피했다. 나는 도저히 서울권으로 갈 수 있는 성적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정아를 피하게 되었다. 나의 점수를 말하기 싫었다. 내 자존심이 정아에게 나의 솔직한 점수를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정아로부터 도망쳤다. 그 애가 나를 찾아와도 피해버렸다. 만나기 싫었다. 어디론가 멀리 정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나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친구들과 마주치지 않는 날을 골라서 고등학교에 갔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지방대학교에 지원했다.

 

정아 소식이 궁금했다. 정아는 연세대학교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해 연세대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은 학교의 최고 성적권에 속한 아이들이었다. 선생님들도 정아에게 많은 기대를 했다. 정아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서 학교의 명예를 빛내주기를 바랐다. 선생님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에 대해 정아도 나름 힘들었을까? 정아는 대학 원서 접수 기간 내내, 그리고 대학 합격 기간 내내 나를 찾지 않았고, 내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각자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들로 인해 서로 무관심했고, 상대방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끔씩 나는 정아가 그리울 때가 있었다. 그 애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연세대를 졸업했다면, 그 애는 공부를 잘했으니까, 과연 지금 정아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을까? 예전에는 학교에 가서 한 번 정아 주소를 찾아보고 연락처를 알아볼까 하는 마음도 가진 적 있었다. 그러다가 또 이래저래 지금까지 세월이 흘러왔다. 다시 한번 사뭇 그 애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매우 궁금해진다. 정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도 나를 기억할까? 나에 대한 추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까? 고 3이었을 때가 나의 구슬 같은 처녀 시절어었음을 일깨워진 정아가 몹시 그립다.

 

 

 

 

 

오늘도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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