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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꽃보다 마흔 님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쨍하고 해뜬날입니다.
저의 꿈은' 내 인생에서 1권의 책'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결심했습니다.
1년에 최소한 50권의 책을 읽고 도서 후기를 쓰자!
그리고 반드시 책 1권을 출판하자'라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며 느끼며 배우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나는 울었다. 엄마가 85세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목놓아 울었다. 꺼이 꺼익, 흑흑흑! "엄마가 왜 저렇게 변해버렸어? 완전 할머니가 되어버렸잖아요. 그리고 머리는 왜 저렇게 잘랐어? 누가 저렇게 엄마 머리를 잘랐냐고! 헝엉헝!" 나는 병원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언니한테 따지듯이 물으면서 울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하얀 바탕에 옅은 파란색 줄무늬가 그어진 환자복을 입고, 짧은 남자 상고머리를 한 반백의 할머니였다.

 

 

어머니는 작년 11월 어느 날 저녁, 한밤중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뻗어 전기 스위치를 누르기 위해 콘센트의 위치를 찾았다. 그것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누르려는 순간, 방바닥으로 철퍼덕 넘어졌다. "아이쿠야, 아이고, 아이고 나 죽겠네, 나 죽겠어!"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아빠는 벌떡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는 전기 스위치 콘센트를 누른다고 생각하고 허공을 짚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꼬꾸라졌고 오른쪽 대퇴부의 뼈들이 으스러졌다. 엄마는 80이 넘은 나이였고 골다공증을 앓고 있었기에 허공에서 몸의 중심을 지탱하려던 오른쪽 대퇴부는 구멍이 숭굴숭굴했기에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퍽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한밤중에 놀란 아버지는 부모님에게 각별한 효심을 보여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언니는 119에 전화를 걸었고, 구급차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모님 집에 도착했다. 곧바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어머니는 수술을 받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의 풍성한 검정 머리카락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당신을 만들어주겠다'는 표어를 가진 아마추어 미용사에 의해 싹둑싹둑 잘려나갔다. 70~80년대 선 머슴 같은 삐죽삐죽한 남자 상고머리 모양을 한 엄마의 모습은 조금 낯설고 이질감마저 들었다. 한 번도 내 머릿속에서 상상해 보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참으로 부지런하고 곱디고운 분이셨다. 딸들은 하나같이 아침잠이 많아서 새벽을 깨우지 못해 부스스한 얼굴로 부랴부랴 밥 먹고 학교에 가는 것이 아침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새벽 5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일어나 간단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고 곱게 화장을 하셨다. 그렇게 19살에 결혼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습관으로 살아오셨다. 84세가 될 때까지도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화장하고 홈웨어 원피스를 입고 하루를 시작하셨다. "엄마! 아침마다 그렇게 샤워하고 머리 감고 화장하는 것 지겹지도 않아? 그냥 대충 얼굴 씻고 눈곱 떼고 아침상 준비하면 됐지,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아침마다 머리 감고 화장하고 그래? 참 부지런해 우리 엄마는." "나는 이렇게 평생 살아와서 하나도 힘들지 않아. 그리고 아침마다 이렇게 단장하지 않으면 엄마는 오히려 더 찜찜해. 조금만 부지런 떨면 금방 준비할 수 있고, 마음도 시원하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데, 뭐가 힘들어!"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이제 50줄에 접어든 나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엄마는 평생 이렇게 살아오셨다. 50~70년대를 살아오신 어머니들이 다 그러했듯이,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23살 남편을 만나 자식 7명을 낳고 논농사, 밭농사 지으며 평생 뙤약볕에서 일하며 살아오셨다. 19살의 고운 얼굴에는 기미와 주근깨가 차츰 뒤덮였고, 7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먹이고 기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다. 조상신에게 밉게 보이지 않아야, 삼신할머니에게 지성을 다해야 자식들이 잘 되고 출세한다는 말을 엄마는 시집온 날부터 할머니에게 듣고 또 들었다. 자신으로 인해 시집 온 집안이 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아침마다 목욕재계 하시고 곱게 화장을 하고 무명옷을 입고 맑고 정결한 정화수를 장독대 위에 떠 놓으셨다. 새벽마다 그 정화수 앞에서 두 손을 싹싹 비벼가며 고개와 몸을 아래위로 숙이면서 삼신할미에게 빌고 또 빌었다. 어머니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남편이 출세하고 자식들이 모두 건강하고 돈 많이 버는 부자가 되기를 그토록 바라셨을까? 맑은 정화수를 마신 삼신할매는 과연 엄마가 그토록 원하는 소원을 다 들어주셨을까? 거울 앞에서 선 내 모습을 바라보니, 아마도 새벽에 삼신할매도 피곤해서 졸고 있지 않았나 싶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해 국과 반찬을 매일 새것으로 만드셔서 뜨끈뜨끈하게 막 지은 흰쌀밥과 함께 푸짐한 한 상을 차려 드렸다. 아버지가 숟가락으로 밥 한 술 뜨는 것을 본 후에야 우리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은 죄다 아빠 앞으로 갔고, 아빠가 밥을 다 드신 이후에야 그 맛있어 보였던 반찬들도 우리 차지가 될 수 있었다. 엄마는 시집 온 집안을 위해, 남편과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 그토록 정성을 다하셨다.

 

 

나는 지금까지도 새벽에 눈을 뜨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 더군다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한다고? 직장에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고? 나에게는 감히 불가능에 가까운 놀라운 습관이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엄마라는 위치가 더욱 단단히 굳어질수록 나는 엄마가 같은 여자요 주부로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신 후에는 너무나 달라지셨다. 예전의 그녀의 모습은 병원복을 입으신 엄마에게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와서 병원에 입원하신 지 5개월이 훨씬 지나서야 나는 엄마를 직접 뵐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손과 발은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진 나무 같았고, 그녀의 온몸에는 점박이 강아지처럼 검고 푸른 점과 상처 자국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염색이 되어 검고 윤기 나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한 회색빛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100세 된 꼬부랑이 할머니 같은 모습에 처음 어머니를 병원에서 직접 뵈었을 때는 화들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앙상한 손과 팔을 만지면서 나는 수없이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고!" "너 누구냐? 우리 집 막내딸, 숙이! 숙이 맞냐? 한국에 왔다고? 숙이맞아? 미국에서 참말로 숙이가 왔어? 오매 우리 숙이가 왔네, 숙이가 왔어." 엄마는 한국 아니면 미국이다. 내가 아무리 프랑스 파리에 산다고 말해도 그때만 기억하고 또다시 내가 미국에 산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국 아니고 파리, 프랑스에 산다고"라고 강조하듯이 반복해서 말해주었지만 지금은 그냥 그렇게 나도 받아들인다. "응, 미국에 살아"라고 말이다.

 

 

엄마는 현재 요양병원에 계신다. 고관절 골절 수술 이후에  못 걸으신다.  그래서  병원에 장기 입원하셨다.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아빠는 1주일에 1~2번씩 서로 번갈아 가며 병원을 방문한다. 엄마를 처음 뵌 이후, 그토록 많은 눈물이 어디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울던 나도 지금은 웃으면서 그녀를 병원에서 만나 뵙고 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와 돌아올 때는 마음이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하고 착잡하다.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단 말인가? 참 인생 덧없다."라는 허무함이 나를 깊은 바닷속 심연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사람이 한순간에 저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인생이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일까?" 철학자가 아닌 나도 인생철학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다. 반백의 할머니로 변해버린 그녀이지만 자주 만나니 그 모습도 익숙해지고 있다. 짧은 상고머리 헤어스타일도 이제는 제법 어머니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워낙 자기 관리를 잘하시고 피부도 잘 관리하셔서인지 얼굴에는 아직 검버섯도 없고, 병원 안에서만 계셔서인지 살짝 그을린 자국같은 기미도 점점 옅어져 깨끗해져 가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엄마를 귀여운 할머니라고 부른다. 연세가 많으시지만 깔끔하고 고운 피부에 항상 미소짓고 웃으시기 때문이라 한다. 정말 다행이다. 치매 증상끼마저 있는 그녀가 좋지 않았던 모든 기억을 다 잊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만을 간직하기를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조상신, 삼신할매에게 두 손 모아 빌어본다.

 

 

1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 면회 시간을 손꼽아 기다릴 어머니에게 나는 달달하고 새콤한 요구르트와 요러브, 뻥튀기 과자를 사 들고 내일 상고머리 흰머리 소녀를 만나러 가야겠다. "너 누구여? 아, 숙이구나, 숙이가 미국에서 왔네!"라며 나를 반겨줄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의 모습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회색 상고머리 소녀여, 언제나 활짝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나지 마시고, 두 팔 벌려 열렬히 환영해 주신다면 당신의 방문객인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소이다.

 

 

 

 

 
 

오늘도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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