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안녕하세요!!
저는 꽃보다 마흔 님과 함께하는 매일매일 글쓰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쨍하고 해뜬날입니다.
저의 꿈은' 내 인생에서 1권의 책'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결심했습니다.
1년에 최소한 50권 이상의 책을 읽고 도서 후기를 쓰자!
그리고 반드시 책 1권을 출판하자'라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저의 글쓰기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며 느끼며 배우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안희연 시인의 새 산문집을 난다에서 선보입니다. ‘먹고 사고 사랑하고’, 그런 기획으로 시작된 글임에 3부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그런데 열어보면 곧 알게 됩니다.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도 ‘당신’을 만나는 이야기라는 것을요. 밤, 달큰하게 깊어지는 밤, 마침내 당신과 만나는 이야기이고요, 크게 웃고 한바탕 울고 맘껏 사랑하고, 그 다음, 그 마음으로 잘 이별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먹고 사고 사랑하는 이야기라니, 어쩐지 응당 있어야 할 키워드 하나 빠진 듯도 하지요. 그런데 시인이 사고(buy) 사는(live) 이야기에 귀기울여보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당신을 위한 ‘기도’구나, 알게 됩니다. 먹고 사며 살아내는 일 모두 사랑을 위한 기도겠구나,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지 앞에서 시인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코를 박고 엎드리는 일입니다. “만나려고. 찾으려고.” 그리고 이 글의 목표 또한 하나이지요. “너를 일으키려고 쓰는 글.” 그러므로 이 책, 기도하듯 써내려간 사랑이라 일러봅니다.
저자
안희연
출판
난다
출판일
2023.03.30

 

 

 

 

p,32. 거짓의 쓸모 : 논 알코올 맥주

쓸모, 쓸모는 내게 무척 중요한 단어다. 용도, 기능, 소용 등의 유의어는  여럿이지만 쓸모는 그중에서도 가장 품이 넓은 단어 같다. 호주머니의 쓸모, 울타리의 쓸모, 침묵의 쓸모, 밤의 쓸모..... 세상 만물에는 저마다의 쓸모가 있고 그것을 일깨우는 것이 쓸모의 쓸모다. 시인에게도 쓸모는 있을 것이다. 시인의 쓸모를 생각하면 이런 문장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온다. 

그런데 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거짓의 쓸모 같은, 하루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고르다 논알코올맥주 섹션을 마주치고는 깜짝 놀랐다. 알코올 없는 맥주의 세계가 이렇게 방대해지다니,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 무슨 경천동지 할 일이란 말인가. 카페인 없는 커피나 붕어 아닌 붕어빵처럼 사물의 본질을 흐리는 이토록 기만적인 처사라니!. 논알코올맥주는 맥주계의 이단아, 맥주인 척하는 거짓이다. 적어도 내가 이런 거짓에 속아 넘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거짓의 쓸모를 필요와 불필요로 단순하게 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거짓은 붉고 어떤 거짓은 서글프다. 어떤 거짓은 축축하고 어떤 거짓은 창백하다. 

맥주를 마실 수는 없지만 맥주 한 모금이 절실한 사람에게 논알코올맥주의 존재는 진실을 능가하는 거짓이듯이. 

 

                                                                                                                                                                                           

논( Non) 알코올 맥주. 이 단어가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건 대략 2~3년 전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고, 술 또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막걸리나 순한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는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리는 증상으로 인해 술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술과 나는 모르는 타인처럼 서로 간섭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몹시 더운 날 정말 시원한 무언가가 마시고 싶었다. 그것이 맥주라고 콕 집어 선택되지는 않았다. 그저 내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무언가면 충분했다. 그러나 내 손에 잡힌 익숙한 음료들은 오히려 더 목마름을 느끼게 했다. 마실 때의 달콤함과 시원함은 있었지만, 마시고 나면 따라오는 더한 갈증은 무엇이란 말인가. 콜라, 사이다, 오렌지 주스, 보리차 등. 그때 문득 내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아, 이게 광고의 효과란 말인가. 잘생긴 남자에 적당히 그을린 갈색 피부, 물에 살짝 젖은 머리카락, 건강해 보이는 근육질의 남자가 손에 든 카스 맥주. 나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것 같은 음료수, 이 더운 여름 한낮의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버릴 것 같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음료수. 내게는 맥주가 술이 아니라 음료수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하필 그 순간에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얼굴이 붉어지고 나를 어지럽게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마저 잠재우는 갈증이 나의 손을 카스 맥주 앞으로 이끌었다. 그 앞에 섰을 때 내 눈에 들어온 희귀한 맥주, 논알코올 맥주 카스.

논알코올 맥주라고? 이런 것도 있어? 논알코올? 그러면 이 맥주를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나를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네이버 지식백과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 나는 나이가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벌게지는 이유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알코올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멀리해 왔다. 심지어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와인조차도. 프랑스에서는 와인이 일반 음료수처럼 매우 싸다. 질 좋고 향기 좋은 와인이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와인의 나라여서 그런가 보다.

알코올이라는 단어에 심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논알코올은 호기심을 지금 당장 문을 열고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나는 얼른 한 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호기심을 가득 안고 산뜻한 발걸음으로 곧장 집으로 향했다. 종종걸음으로 집에 도착해서 바쁘게 손을 움직여 문을 열고 재빨리 냉동고 문을 열어 얼음을 꺼내 들었다.

 

커다란 유리컵에 콸콸 논알코올 맥주를 붓고 그 위에 각진, 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얼음을 하나, 둘, 셋 넣었다. 그리고 꿀꺽꿀꺽 게걸스럽게 들이켰다. 아! 시원해. 습기 없는 바람이 나의 얼굴과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행복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부엌, 그 냉장고 앞에서 유리컵 속에 든 논알코올 맥주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논알코올 맥주는 여름마다 만나는 정겹고 반가운 친구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파리에서도 로마에서도 여름 여행을 하면 나는 이 친구를 만나러 꼭 슈퍼마켓에 들른다. 그리고 기분 좋게 음료수 부스를 열어 논알코올, 나는 알코올이지만 알코올이 없어요,라는 거짓의 쓸모 있는 맥주를 꺼내든다. 그리고 여전히 신난 발걸음으로 곧장 숙소로 와서 얼음과 함께 행복한 나라로 나를 데려간다.

 

작가가 고백했듯, 맥주 한 모금이 절실한 사람 같은 나에게 논알코올 맥주의 존재는 진실을 능가하는 거짓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거짓의 쓸모 - 안희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거짓의 쓸모를 필요와 불필요로 단순하게 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거짓은 붉고, 어떤 거짓은 서글프다. 어떤 거짓은 축축하고, 어떤 거짓은 창백하다."

 

나보다 두 살 터울밖에 안 된 오빠가 54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우리 곁을 떠난 새벽, '정숙아, 재훈이 갔어. 방금 의사가 사망 진단 내렸어. 흑흑흑.' 전화 속에서 울음 섞인 언니의 차디찬 음성을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그저 듣고만 있었다. '진짜? 정말이야? 왜?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어?'라는 말만 되풀이 읊조리고 있었다.

그때 차라리 '농담이었어. 그냥 너 놀라게 하려고 내가 거짓말 좀 했다.'라고 진실이 거짓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우리 형제들은 당분간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서로 묵언의 약속을 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오빠를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 속에서 한 줌의 재로 받는 그날까지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을 그렇게 뵈었다. 그러나 그 거짓은 오래 기다려 주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차갑게 식은 죽은 육체가 되어버린 오빠의 몸도 부모님을 그리 오래도록 기다리지 못했다.

 

결국 오빠의 장례식 날 부모님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다.

정신이 떠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아무 말도 못 하시고 흐린 초점의 시각으로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을 마주한 부모님. 죽어버린 자의 모습을 방불케 한 부모님은 속절없이 3일간의 거짓을 깨트리고 나온 진실 앞에 신실하듯이 쓰러지셨다.

그렇게 결국 진실이 거짓을 이겼다. 그러나 3일간의 거짓은 부모님에게 잠시나마 삶의 행복이라는 쓸모를 주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거짓은 자신의 쓸모를 다했으니 족하지 않은가!

 

오늘도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논알코올이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거짓의 쓸모를 지닌 그에게로 나는 오늘도 달려갈 것이다.

 

 

 

 

 

 

오늘도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반응형
반응형
최근에 올라온 글